The Bed of Procrustes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나심 탈레브) - 누가 이론에 삶을 끼워맞추는가
나심 탈레브의 저작들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지난 금융 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여겨지는 블랙스완이 가장 유명하고 안티프래질이 잘 알려진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나심 탈레브의 정수는 이 책,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적이다. 아테네를 오가는 여행자들을 납치해서 저녁을 대접하고, 하룻밤 묵어가게 해놓고는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나 머리를 잘라내고,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침대 길이만큼 몸을 '잡아늘려' 침대에 맞추어 해쳤다. 나심 탈레브도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프로크루스테스' 라는 이름은 영어로 'Stretcher', 잡아 늘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제목에 이 책의 모든 정수가 숨어 있다. 키포인트에서는 글의 말미에서 다시 논하도록 하자.
김규항의 혁명노트가 장과 절로 분리된 것처럼 특이한 형식으로 편집되었듯이, 이 책도 짧은 인용구를 모아 비슷한 주제끼리 묶어놓은 특이한 형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책장을 펼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가는 형태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처럼 가끔 열어보고 아느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도록 읽는 그런 책이다. 그 한 구절만 읽어도 충분하다. 나심 탈레브는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경계하는 사람이다.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적의식을 지니거나, 책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인간의 활동은 사냥꾼에 가까워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활동이 본성에 더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점이, 나는 아주 맘에 든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즉석에서 찾은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찾아 인용한다.
"No authors should be considered as having failed until he starts teaching others about writing."
(어떤 작가도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 그가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 한 문장 다음에는 이것과 비슷한 주제를 논하지만 완전히 다른 독립된 다른 문장이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짧게 끊어 읽어도 좋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다 읽었는지 여부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짧은 문장들은 나심 탈레브가 해석한 세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자, 블랙스완부터 스킨인더게임까지 나심탈레브의 저작을 관통하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그 아이디어란, '책에 나오는 이론에 세상을 끼워 맞추려는 자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로 요약할 수 있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가 납치한 여행객을 침대에 맞추어 대접하듯이, 전문가들, 전문가를 자칭하는 크리에이터들, 교수와 교사들, 연준의장과 달러를 찍어내는 그 일당들, 어떤 분야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책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는 엘리트들,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과 자연현상이 정규분포와 미분가능한 세계여서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범생이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작은 세계는 크게 보고, 그들이 모르는 세계는 완전히 무시하는 건방을 떨면서 '책' 에 있는 자신의 지식 체계에 세상을 완전히 맞추어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세상을 보도록' 만들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그런 지적인 게으름과 오만을 조롱하는 아포리즘으로 가득하다.
나심 탈레브는 지금은 작가와 철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금융 시장에서 옵션트레이더로 커리어를 일군 사람이다. 그가 주로 했던 일은 금융 옵션 상품을 이용하여 금융시장에서 투자자의 위험을 헷지하는 일을 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 글이었던 최생림 교수의 외환론에도 환 시장에서 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옵션의 개념이 이론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는데, 옵션 시장은 환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주식을 포함한 모든 시장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옵션의 구조를 '가르치는 사람'과 옵션을 이용하여 실제로 '투자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전자는 이론가이지만, 후자는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블랙스완'은 세상과 시장의 불확실성, 세상이 95% 신뢰 수준에 일정한 오차 범위를 갖는 정규 분포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책이고, '안티프래질'은 옵션으로 대비가 가능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성이 커지는 복잡한 세상에서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션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가 주제인 책이며, '스킨인더게임'은 전문가들이 정작 자신은 위험에 전혀 노출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다른 사람에게는 위험으로 이끄는 부도덕함을 말하고자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지금까지의 저작들을 짧은 시처럼 정리하고 있다.
어떤 독자가 나심 탈레브의 저작들을 잘 소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면, 이 책의 한 문장을 골라 그 뜻을 자기가 얼마나 음미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짓은 탈레브에 따르면 매우 범생이 같은 (Nerdy) 짓이다. 당연히 권장하지도 않는다. 그라면, 책이란 음식이나 다른 삶의 이벤트와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 간헐적이고 불규칙해야 마땅하며, 그렇게 읽을 때마다 문장이 새롭운 의미로 읽힐 때 삶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는 살아있는 독서가 된다고 말할 것이다.
가장 마지막 페이지의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독서의 기록을 마친다.
"Wisdom isn't about understanding things (and people); it is knowing what they can do to you."
책을 주제삼아 머리로 하는 일에 익숙한 내가 듣고 마땅히 스스로 경계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