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은 시대의 지성이 아니다.

불곰맨발 2022. 3. 1. 16:48

이어령이 시대의 지성이라는 말에 그냥 웃고 만다. 이어령을 비판할 마음은 없다. 그냥 비웃을 뿐이다. 

한국을 해석하고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책으로 늘어놓는 일에 시간을 정성스레 쏟은 사람인건 알겠다. 그리고 그런 저작물들은 주류 언론에서 팔아먹기 좋은 형태로 등장해서 대통령이나 정치인 따위에게 적당하게 편집되어 소비된다. 이건 전혀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작가를 단순히 글을 파는 직업으로 환원해서 보면, 그는 성공적인 세일즈맨이다. '글을 판다' 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글쟁이가 글을 파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이어령씨는 분명 성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의 지성' 까지 추어 올리는 일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 이어령을 시대의 지성으로 박제하는 것은 이어령의 저작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이어령을 비판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시대의 지성이라면 시대를 거쳐 동시대를 벗어나 검증을 받아야하므로 고인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추어올림은 오히려 폐가 된다. 

이어령에 대한 시대의 정신이라는 평가가 고인을 직접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임과 별개로, 이어령이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어령의 저작은 특히 젊은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가. 대개 그의 작품은 산업화 시대와 산업화 시대에서 벗어나는 한국을 해석했을 뿐이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당장 오늘을 사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개인적으로 적당히 성공하고 유명한, 관료까지 올라간 꼰대라는게 내 평가다. 모처에서 표를 팔아먹는 '*** 마스터 클래스'에 이어령 선생이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빠르게 별로 들을 가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천년 넘게 이어져 온 고전도 시대상황에 따라서 필요없는 책으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면서 책을 팔던 인간들이,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논어를 들먹이는 것이 '정신세계 시장'의 현실이다. 이어령이 했던 강연 중 제목이 '언어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가 있었다. 내 답은 간단하다. '힘이 실린 언어가 세상을 바꾼다.' 굳이 30분 가까이 되는 강연을 듣고 싶으면 들어봐라. 그 강의를 듣고 이어령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건 별로 상관이 없다. 문제는 그렇게 30분을 써서 당신의 인생이 바뀌느냐 여부이다. 

대한민국은 흔히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작가들의 저작을 팔아 왔다. 티비프로그램 한 구석을 차지했던 지식인들의 앙상한 현실을 봐라. 교양을 자처했던 티비프로그램에 등장했던 패널들의 이름이 기억난다면 그 사람들이 내밭은 말과 글로 당신에게 어떤 임팩트가 있었는지를 돌이켜보기 바란다. 이런 이유때문에 나는 교수들과 작가들의 말을 80% 이상 디스카운트한다. 그들에게 세상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이론이 있다. 그들이 가장 쉽게 아무런 악의없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이 세상을 이론으로 해석하고 이론을 토대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짓이다.  왜 나쁜 짓이냐고? 실패하기 때문이다. 블로그 이전 글인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처럼, 그들은 세상을 이론에 맞추어 해석하고 본인들이 초래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마르크스는 수 많은 저작을 통해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해석했다. (언젠가 다루겠지만) 그 해석에는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마르크스는 세상을 해석하는데 그치고, 함부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론가가 어설프게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은 그 해결책을 교조화하고 타협없는 강령으로 만들어 광신도가 되는 일이다. 심지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쓴 나심 탈레브도 비판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시대의 정신이라는 평가를 하려면 적어도 천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나 주류 언론의 심리에는 무엇이 있나. 그냥 그렇게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 추켜세우고, 뭔가 유명한 사람이 하는 얘기는 다 맞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지적인 게으름과 정신적인 주인의식의 결여가 있다. 두 가지 모두 귀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촉매제에 불과하다. 

 

"이야기꾼을 이야기꾼이라 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꾼을 시대의 지성으로 치장하는 건 장난질에 불과하다."

 

역사를 읽고 자기 해석을 만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이어령이 했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 시대정신은 그런 흔한 작가들의 글에 있는게 아니라,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같은 수명이 긴 광고 카피나, 온라인 쇼핑몰의 혼이 담긴 상품 상세 페이지 글과 블로그에 있다. 시대정신은 어쩌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어느 유튜버의 컨텐츠 안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정신은 나와 당신의 손가락 끝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