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론 (제 7판, 최생림 교수 저)

불곰맨발 2021. 12. 5. 22:38

94년에 처음으로 외환론을 읽었었다. 

외환론 7판

이제 겨우 산수가 되기 시작한 중학생이 시립도서관에서 외환론 1판 1장을 읽고 아직 제대로 출범도 하지 않은 유로화의 전신인 ECU의 환율을 계산해냈을 때 기쁨은 상당했다. 그 당시에 미래에 유망할 직업으로 외환딜러를 꼽았던 적이 있었고, 무역이 한창 늘어날 때라 실제로 그럴 듯하게 들렸었다. 그렇게 이 분야에 나름 관심을 두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약 4년후 한국에 IMF라는 국제기구 이름이 뉴스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공계로 진학하면서 이 길과는 영 멀어졌지만 2000년이 지나 처음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파리의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결제하기 위해 처음 프랑스어로 들어봤던 '1 Euro' 라는 알바생의 발음('앙 뇌호')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오랜만에 찾은 대학도서관에서 외환론 책이 꽂혀 있는 서가를 발견했을 때, 그 흥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봤던 외환론 옛날 책부터 2판, 3판...순서대로 보든 판본이 서가에 구비되어 있었다. 오래 전에 덮어 두었던 94년 여름의 기억이 다시 소환되었을 때 내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생 시절에도 FX 마진거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도 했고, 나름 외화예금을 가입하기도 했었다. 그 중에서도 금 통장을 가지고 있다가 2009년부터 꽤나 수익을 올렸던 좋은 기억도 있다. 

 

외환론은 읽기 편한 단행본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학과 학생에게는 교과서로 쓰이는 책이고 학술적인 내용으로 가득해서 일반 독자에게 권하기 쉬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정판을 거듭하면서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보이는 책이다. 특히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IMF 8조국 진입에 대해서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다. IMF 8조국이 되었다는 의미는 변동환율제를 공식적으로 외환당국이 채택했다는 의미이다. 94년에 IMF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런게 있나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실제로 아버지 세대부터 약 4년 정도 선배들이 겪은 IMF 시절, 대우를 비롯한 간판 큰 회사들이 사라지던 시절을 겪은 이후 20년 이상이 지나 외환론의 서두에 IMF에 대한 설명을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순간 울컥했달까.

Trillion 이라는 단어를 우습게 쓰고 있는 시절이다. 조 단위를 아무렇지 않게 쓰다못해 미국 부채한도에 대해서 '경' 이라는 단위가 등장하는 2021년의 현실이다. '경', '해' 라는 단어는 초딩시절 내가 더 높은 단위를 알고 있다고 아이들끼리 자랑할 때나 쓰던 단위다. 암호화폐의 등장은 놀랍지만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2021년에 개정된 7판 외환론은 암호화폐와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까지 키워드로 삽입해 놓았다. 물론, 본격적으로 암호화폐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환율과 외환, 거시경제 일부를 논하는 교과서로서 어디까지나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암호화폐에 대해서 언급만 하고 있는 정도이다. 

도미노 피자의 쿠폰과 대한민국 원화의 지위가 사실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식 계좌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 받고 있는 급여를 원화로 예금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달러화도 엄청나게 희석된 통화라는 걸. 원화가 희석된 달러를 희석한 통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무역당사자의 입장에서 환 위험을 최소화하는 통화선물, 옵션, 스왑에 대해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난 지금 이걸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걸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핑몰을 한 번 해보면 몸으로 체득이 될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제 곧 이 책을 생활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지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시작한 일에 외환을 다루는 일은 아마도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나는 사전처럼 쓰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