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이 출간된 것은 벌써 70년도 넘었다.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 전에 미리 선언할 것은 선언해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리뷰를 쓰는 나는 그 흔한 일본 여행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학부 시절에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여행을 등한시 했던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 일본을 한 번도 가보기 않은 사람이 한국의 일반적인 국민정서와 책에만 의존해서 일본이나 일본문화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는 글을 쓰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 국화와 칼을 읽을 이유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곧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나 스스로를 규정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좋으나 싫으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조치들이 매우 국수적이고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아베 집권기 시작까지 가야하겠고, 본격적인 문제의 시작은 2년전의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였다. 5년 이내에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 군사적 대립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GDP 2021년 GDP 추정치는 정확히 일본의 삼분의 일(1/3) 에 해당한다. 중국의 국가 GDP가 미국의 절반을 넘기 시작했을 때, 두 국가간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한국과 일본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국가의 국민이 서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경제적인 규모가 이 두 국가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각종 유튜브 채널에는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5년내에 일본을 추월한다는 컨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일본은 자본력과 해상자위대는 여전히 한국의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결을 할 나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사회와 문화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베네딕트의 작업에 대해서 논쟁은 여지는 충분히 있다. Anecdotal study, 즉 특정한 사례의 이야기에 기반한 연구라 피상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다는 논란은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논쟁은 최종 목표인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큰 기여는 하지 못한다. 태평양 전쟁을 끝낸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연구결과물이 급하게 필요했다. 학문적인 완결성을 갖추었는지는 학자에게 중요한 일이지 전후처리를 서둘러야 했던 맥아더 사령부에게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지점, 학문적인 연구 성과물이 실전에 투입되었더는 점에서 국화와 칼을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당시 최고의 관심사는 일본에 미군이 진주했을 때 일본인이 저항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전후처리를 해야 가장 효율적일지 알아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세켄', '하지', '기리'와 '기무', '온'과 같은 개념을 도입해서 일본인의 문화적 특질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질은 전쟁 앞에서 무기력한 것 같지만, 오히려 전쟁에 임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데 큰 힌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왕의 한 마디에 일본은 맥아더 사령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패자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20년대에도 계속 되고 있다. 자위대의 무장은 미국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것이고, 일본은 미국과의 외교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베네딕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아마도 이것이 '현대에 일본에게 가장 맞는 자리라고 생각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철저하게 편협한 것이며, 국화와 칼 자체에 대한 논란만큼이나 일본에 대한 판단은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나의 적인 이런 상대일 것이다.'라고 예단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은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은 한 번도 제국이었던 적이 없고, 통치철학을 가지고 세계 외교무대에 선 적이 없다.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은 이것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참고한 책들이 있다. 권성욱 작가의 '중일전쟁'과 '중국군벌전쟁', '일본인 심리상자', 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육군' 이다. 권성욱 작가의 두 책과 '쇼와육군'을 통해 공통적으로 내가 찾은 코드는 국가의 구조와 정치문화, 사회통념이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점이다. 나의 편견에 따르면 중국은 여전히 황제의 나라이고, 일본은 여전히 쇼군의 나라이다. (덧붙여 러시아도 차르의 나라라고 보는 것에 나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인이 해외 통치와 경영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것은 굉장한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 같다. 과연 한국이 일본과 경제적 군사적 대립이 심화될 때 일관된 통치철학을 가지고 꾸준한 정책을 취할 수 있을까. 나날이 용렬해지는 5년단임제 대통령제 기반의 한국 정치풍토와 점점 예민해지는 국민정서를 볼 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국화와 칼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 든다. 한 나라와 그 구성원이 의외로 사회문화적인 특질때문에 어떤 선택을 한다는 점, 베니딕트 교수가 소개한 일본사회의 개념들은 유신을 하고 승전과 패전을 거듭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들에 집중하여 대답을 제공하려 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의 일본인 이해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참고한) '일본인 심리상자'에서 보이는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는, 아직 현상학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일간의 대결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다. '국익'은 때로 개인에게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추상적인 이익인 경우가 많고, 한중일 삼국 모두 국가주의의 폐해때문에 본래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한일간의 대결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뭔가 장기적인 생각과 계획을 좀 해야하지 않을까. 아주 날 것의 표현을 하자면, '일본을 어떻게 벗겨먹을 것인지' 궁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하고 군사적인 대결에서 우월한 고지를 점했을 경우 일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일본이 20세기초에 조선총독부와 조선은행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 스스로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아마도 다른 나라를 어떻게 벗겨먹을지 가장 많이 고민한 국가는 영국일 것이고, 이머징 마켓의 시장과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벗겨먹을지 가장 많이 고민한 주체가 월스트리트이다. 세계사는 비정하고, 이 현장에서 강한 자는 항상 옳다. 베네딕트 교수라면 이상주의와 도덕적인 우위,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안심하는 한국인의 특질에 대해서 어떤 연구 결과를 내어놓았을까. 한국인은 일본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현무 미사일과 KF-21이 개발되고 실전배치 된다고 해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점유율을 높인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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