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마키아밸리) - 어떤 리더십과 지배구조가 필요한가

불곰맨발 2021. 12. 27. 22:55

군주론에 대한 '마키아밸리즘' 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잊는 것이 좋다. 군주론은 리더십과 조직의 지배구조, 조직 문화에 대한 책이고, 이런 주제에 대한 책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할 정도로 독자의 상황이 한가하지는 않다. 

군주론


마키아밸리의 이 저작은 길지 않다. 서점에 가면 포켓판으로 3천원대에도 살 수 있는 이 책은 길지 않기 떄문에 그 밀도가 배가되는 책이다. 

마키아밸리는 공무원이었다.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피렌체 공화국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피렌체의 정체가 뭐가 문제가 있길래 맨날 얻어 터지고 사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고, 정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을 당시 피렌체의 실권자가된 로렌조 디 메디치에게 보여주고 구직활동을 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개 군주론의 모델이 된 리더가 메디치가 아니라 체사레 보르자였다는 주장이 더 많아 보인다. (정확하진 않다. 난 절대로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현대의 독자에게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 누구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현대에 군주론을 읽고 생각해볼만 한 일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지금 이 시점이 당시의 이탈리아에 비해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키아밸리 당대의 이탈리아는 누구나 탐을 내는 곳이었다. 마키아밸리가 그닥 길지 않은 인생을 사는 동안 이탈리아는 전쟁터였다. 아래를 보자.

이탈리아 전쟁 간단 연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이 끝나고 중세가 막을 내리면서 로마의 교황이 단순한 영적인 지도자 따위가 아니라 교황직할령을 통치하는 세속 군주이면서 종교적인 권위를 앞세워 사실상 유럽의 왕 노릇을 하려던 도둑놈 심보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막상 교황이 군사력을 직접 보유하지 않았음에도 당시 낙후했던 다른 유럽지역보다 월등히 앞선 문화를 자랑하는 지역이었다는 점이 유럽의 왕들이 이탈리아를 탐냈던 이유이다. 당시 프랑스의 왕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탈리아에서 전리품을 챙기고 싶어했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까지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이 전쟁의 시대를 이탈리아 전쟁이라고 부른다. 

 

마키아밸리 당대의 복잡한 국제정세


이탈리아 전쟁과 1618년에 발발하는 30년 전쟁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이 부분은 전쟁사적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데, 전쟁의 기술과 전술이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밸리 생전의 1525년 파비아 전투는 소총이 등장하면서 보병 중심으로 전쟁의 판도가 바뀌게 된다. 30년 전쟁 직전의 레판토 해전에서는 갈레선으로 대표되는 지중해 중심의 해전의 종언을 고하고, 본격적으로 대서양 중심의 대항해 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마키아밸리는 유럽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살았던 사람인 셈이다. 

따라서 당시 조금만 능력있는 군사지도자는 유럽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고, 아직은 전략과 사기가 통하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군사적인 재능을 지니는 것은 당시의 국가 리더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마키아밸리는 당시 이탈리아의 리더들이 하나같이 실패하거나 덜떨어졌던 것이 '군주' (리더)로서의 미덕과 자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군사적인 재능을 가지고 조직의 상비군 체제를 만드는 것은 그가 꼽은 가장 중요한 리더의 미덕이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권력을 지킬 수 있는가 여부는 군주국의 힘을 측정하는 척도였다. 교화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였던 체사레 보르자가 마키아밸리가 보기에 그나마 이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었으나 결국 이탈리아 제패에는 실패했다. 

그 외에도 군주론에 등장하는 리더의 모습은 중국의 전국시대나 삼국시대에 요구되는 재능과 매우 닯았다. 좋은 법과 좋은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조건은 한비자를 접한 사람은 익숙하게 유사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떠한 군주국의 경우에는 '군주 최상의 요새는 인민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조건이 붙어 있다. 군주국이 만약 민주정에 가까운 정체라면. 마키아밸리는 군주국의 종류를 나름대로 구분해두고 그 종류에 따라 리더는 사랑받으면서도 두려운 존재여야 하는 팔색조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리더십을 발휘하여 지배구조를 유지하는데 왕도와 패도, 위선과 위악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마키아밸리에 대한 오해가 등장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권력을 유지한다'는 단순화된 주장을 마키아밸리가 했다는 오해다. 분명히 그건 오해에 불과하다. 마키아밸리는 본인의 역량과 상황에 따른 적극적인 리더십의 변화를 중요시한 것이지,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 왕도가 통하는 나라가 있고, 패도가 통하는 나라가 있다.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훗날 나폴레옹은 교황청을 포격으로 날려버리긴 했지만.

요컨대 마키아밸리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바탕으로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 어떤 조직과 조직 문화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흔한 도덕과 윤리, 혹은 정신세계에 근거한 리더십 이론보다는 훨씬 더 실질적인 것이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마키아밸리에게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마키아밸리 알파 메일이 아니라는 점은 함정이지만)

자, 고전을 현대로 가지고 오자. 현대에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국가의 리더십만 리더십이 아니다. 기업과 동호회에도 리더십은 필요하다. 최근의 경향은 갈수록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찾고, 가뜩이나 코로나로 모이는 것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런 현대의 변화에 맞는 리더십은 무엇이고, 마키아밸리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한가?

책을 함께 읽은 이들과 논의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더십의 가치와 마키아밸리가 찾은 리더의 자질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점조직에 가까워지고 있는, 투명성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의 조직일수록 리더의 Lead by Example (솔선수범)과 비전 제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세계나 권위주의 시절과는 다르게 윽박지른다고 잘 굴러가는 조직은 없기 때문이다. 리더는 더 분명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해야만 하고, 비대한 조직보다는 작은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수평적인 조직과 리더가 없는 조직은 분명히 다르다. 철저히 임무중심형 (mission-oriented) 조직이어야 현대의 부침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문제는 한국의 모든 기업들과 한국 정부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팔지 못하면 죽는 기업과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의 현실은 마키아밸리 당대의 이탈리아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려운 시절,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