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정식 한국어판 전집 - 어쩌면 이것이 창의력의 모습

불곰맨발 2022. 4. 4. 00:14

'그림이 더럽다.' 혹은 '소름끼친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 작가가 이토 준지다. 그것은 이토 준지에게는 칭찬이다. 국내에는 토미에와 소용돌이로 알려져 있을 텐데, 확실히 이토 준지의 그림체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더럽다'나 '소름끼친다.' 보다는 이상하다는 표현이 내가 쓰고 싶은 표현이다. 이토 준지의 작화에는 이상의 시가 풍기는 묘한 탁함과 나른한 공포가 있다. 이토 준지가 그리는 토미에는 피를 토할 정도로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얼굴이 애들 낙서 같은 멍하고 둔한 느낌도 있으며, 가끔 등장하는 벌레의 묘사나 짙은 표정 음영처리는 정말 '더랍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정식 한국어판 표지

 


나는 애니메이션 전문가도 미술전문가도 아니다. '공포만화'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인지도 사실 잘 모른다. 이토 준지이외의 공포만화작품을 본 적이 없다. 내 상식 수준에서 애니멘이션 내의 서브 장르를 가리는 일은 별로 관심있어 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를 실사영화화 한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시도가 실패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로테스크하고 징그러운 장면이 들어간다고 해서 이토 준지의 그림이 주는 느낌을 담아낼 수는 없다. 

이토 준지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것이 창의력의 모습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스토리의 몰입도나 마블의 새로운 세계관 같은 것은 사실 창의력과 무게가 어울리는 것들은 못된다. 이토 준지는 그림만으로 그 창의력을 만들어 낸다. 작품이 만들어 내는 단순히 '무섭거나 놀래키는' 것이 아닌, 묘오오오오한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이건 이토 준지의 작품이다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림의 시그네쳐가 확실하다는 의미이다.

캐릭터의 표정

이토 준지가 그려내는 평범한 주인공들의 표정은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유치하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단순히가 넘치는 편이지만, 자주 등장하는 유럽인 캐릭터나 악의 화신 캐릭터들은 놀랍게 아름답게 그린다. 특히 '토미에'나 '검은 옷을 입은 소년' 같은 캐릭터는 선이 가늘고 아주 마른 체형의 병적인 미소녀와 미소년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무덤덤하고 멍청해보이기까지한 평범한 주인공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악마, 추하고 끈적끈적한 괴물의 삼박자가 만들어내는 부조화가 그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이토 준지가 그린 고양이마저 그런 다면적 공포를 갖추었다. 한 없이 귀여운 고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체셔 캣 같은 괴물이 되었다가, 방귀를 뀌는 의외의 유기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적응하기 어려운 각각의 캐릭터가 부조화를 만드는 것이 아주 조화롭게 공포만화라는 장르에 걸맞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건 작품에 등장하는 곰팡이나 피를 묘사하는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토 준지가 그린 곰팡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가렵고, 마치 곰팡이를 그린 부분에 정말 곰팡이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혈옥수' 같은 작품을 보면 '참 신선한 피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롱한 피를 그려놓았다. 놀라운 것은 이 만화의 그림들이 흑백으로 프린트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흑백으로 묘사된 '피'와 '곰팡이'가 객체의 색을 머릿 속에서 재현한다. 

대개 쓸모가 있는 책을 다루는 이 블로그에서 이토 준지의 만화를 다룬 것은, 이것이 작가가 갖출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의 창의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신기한 이야기만큼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인생을 살아간다. 창의력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연료이다. 누구나 위대한 인생을 꿈꾸고 현실에서는 평범하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걸 극복하든 하지 못하든, 그래서 인간은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창의력이란 이야기를 원하는 인간의 몰입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블로그에서 다뤄 온 책의 저자들도 독보적인 스타일과 소재를 가지고 있다. 이어령은 이어령, 루스 베니딕트는 베니딕트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고, 그들을 대표하는 소재들이 있다. 창의력은 그 사이의 어딘가 있는 작가의 독창적인 점이다. 그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희소한 자원이다. 그리고 이토 준지는 스토리에 그림을 더하여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