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언제나 한국의 가장 큰 쟁점이다. 간단하다. 한국의 대도시 부동산 시가총액의 합이 1위 기업 삼성전자보다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은 대한민국 정치의 성패를 가르는 문제이다. 모든 정책이 성공해도 부동산 정책이 빗나가는 순간, 정권은 욕을 먹는다. 이 시장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 이라는 구절에서 '부동산'이라함은 주택, 보다 정확히 '아파트'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발레리 줄레조의 (직접 지은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책 네이밍은 매우 정확하게 핵심을 타격했다.
실제로 '아파트공화국' 이라는 말은 부동산 투기에 대한 자극적인 뉴스 제목으로 상당히 자주 사용되기도 했다. 줄레조의 '아파트공화국'은 2007년에 출시되었고, 이 책을 사서 읽었을 당시 나는 대학 학부 졸업반이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당시 노무현 정권 말기 버블 세븐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당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2007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죄송하다.' 라고 소회를 밝힐 정도로 부동산에 민감한 정국이었기 때문에 2007년 2월에 1판 1쇄를 내면서 나름 노리고 기획해서 낸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책의 장점은 대한민국 아파트 건설사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도 아파트에 살고 있던 나도, 아파트의 발전사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지는 못했다. 심지어 선친께서 30년간 아파트 시공에 몸담은 베테랑임에도 아파트에 대해서 잘 몰랐고, 동시에 아파트에 제대로 투자를 하지도 못했다. (이런 것이 실행과 익힘이 없는 헛똑똑이의 배움이다.) 이 책 덕분에 뉴스에서 들어보기만 했던 마포아파트와 와우 아파트, 철거된 남산 외인 아파트의 건설 맥락을 알 수 있었다. 아파트의 사회적인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정치하게 아파트 건설의 의미와 생활양식을 소개하기 때문에,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다.
저자가 네덜란드의 예를 들어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나라가 반드시 아파트를 채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을 때는 수긍이 갔다. 당시에도 이미 아파트가 고급화되면서 연면적을 확보하고 세대수를 많이 만들지 않아 일부 아파트 단지의 인구 밀도가 실질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주거지역의 인구밀도보다 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추측이었지 어떤 근거가 되는 데이터가 내 손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뒤로 가면 갈수록 상당히 정확한 예측을 하면서도 프랑스의 시각에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아파트를,
1. 일종의 감시체제이면서, 동시에 급하게 발전해온 한국 사회를 안정시킨 수단으로 본다.
2.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단독주택을 더 선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아파트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얘기하면서,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가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차별화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3. 대단지 아파트는 재개발의 일상화를 부르고 도시 형태가 덜 견고하게 된다.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빌리면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
...라고 분석했다. 이 모든 항목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저자는 아파트가 점점 고급화되며 관리비의 상승과 함께, Gated Community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이 예상은 상당히 정확하게 맞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아파트 방식이 가진 문제점을 인지하면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이 한국의 아파트가 지닌 개발 방식의 문제라면, 이러한 개발 방식을 취하지 않은 다른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은 이러한 문제가 없거나 적어야 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도시의 형태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파리와 런던에도 구역에 따른 사회적 차별화 문제는 있다. ('13구역' 같은 영화를 보라.) 독일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서구의 도시 상황은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주택 임차 비용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각 도시의 시장 선거가 있을 때마다 홈리스 문제와 저렴한 주택 정책 (Affordable Housing)에 대한 공약이 등장한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차별화 문제', '도시의 파편화' 전형적으로 2000년대에 대학가에서 들을 수 있었던 문제 제기의 일종이다. 일리는 있지만, 저자의 문제제기가 명확하지 않다. 저자가 책에서 다루었지만, 프랑스의 경우 60년대 도입된 아파트는 실패했다. 대부분 단독주택을 선호했고, 아파트는 싸구려 주택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도 비슷하다. 소수 인종이 사는 소위 '프로젝트 (Project)'에서의 빈민, 마약 문제가 발생하면서 아파트 단지가 게토화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저자가 말한대로 한국의 경우는 프랑스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아파트가 고급 주거지가 되고 빌라촌이 게토화된다. 지금 이 단락은 저자의 책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이 대조에서 한국 아파트 대단지가 야기하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차별화' 문제가 분명치 않다는 얘기다. 신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사회적 차별화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났고, 유난히 서방에서 주택 환경의 큰 차별화가 일어났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퇴락한 주거지구와 밀려나는 세입자는 있다. 그렇다면 저자의 논리가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 이라고 부르며 문제 제기를 하는데 효과적인 논리인가?
내가 보기에도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맞고, 예상했던 문제들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아파트의 죄가 아니다. 개발 방식이나 건축 양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주택 문제를 겪고 있는 세계의 모든 도시는 도시의 형태가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인구는 늘고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도시의 형태가 오랜 형태로 굳어 있기 때문에 더 적절한 가격의 주택 공급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플레이션도 한 몫 거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 비용은 상승한다. Gated Community는 미국에도 멕시코에도 있다.
이 책을 저술할 당시 40세의 소장파 연구자였던 저자는 École des Hautes Études en Sciences Sociales (EHESS)에서 한국연구센터 디렉터로 재직중이다. 미안하지만 이 문제를 사회학으로 풀려고 하면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시장에서 품질을 유지하면서 주택을 공급할 것인지는 사회학이나 정치의 문제 이전에 효율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택을 구매하거나 아파트에 투자하기 전에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도 아파트 이상의 주택을 원한다. 나는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싶다. EBS에서 하는 '건축탐구 집'을 즐겨본다. 일정한 평면도가 아닌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을 뿐만 아니라, 소유하고 싶다. 이런 집 말이다.
정말로 맘에 드는 집이다. 대개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집들은 서울 수도권을 벗어나 있다. 그래서 나도 이런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서울에 아파트도 가지고 싶다. 아니, 아예 서울에 저런 단독주택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보통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과 서판교, 운중동 같은 곳에 그런 단독 주택들이 있다. 한술 더 떠서, 서울에 단독주택이 있고, 지방에도 저런 주택이 있으면 좋겠다.
집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문제는 누구나 그런 욕심을 채울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어찌보면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다. 오히려 아파트가 유사항 평면도로 같은 단지는 동일한 입지에 건축되기 때문에 누구말대로 아파트가 화폐화되면서, 적절한 투자를 통해 비교적 자본이 적은 사람도 아파트는 노려볼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어쩌면 서구에서 못해서 안달인 Affordable Housing이 한국의 아파트가 아닌가. 마침 이 글을 쓰는 시간이 2022년 대선 당일이다. 지금 이 시점에도 부동산 문제는 대한민국의 중심 이슈이다.
이 책은 내용은 다 맞았으면서 결론을 삐딱한 시선으로 내서 불편한 책이다. 내가 보기엔 프랑스 학자의 편견이거나, 출판사의 편견에 찬 기회의도가 드러난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본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저자가 제기한 아파트의 문제들은 분명히 유효한 것들이 많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독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답이고, 당신이 원하는 곳의 단독주택은 항상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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