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영원한 제국은 작가에 대한 논란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역사 '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니 Alternative History라고 부르기는 무리가 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진짜 역사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극화가 잘 된 작품이다. 독서의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블로그 주인이 굳이 소설을 리뷰하여 기록문을 적는 것은 '책과 생각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내 '책이 가지고 있는 담론의 힘'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처음 '영원한 제국'에 대해 줏어들은 것은 학원의 국어 선생님으로부터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거의 수업시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시다시피한 선생님으로부터 비슷한 모티브로 '문제의 책'이 등장하는 다른 소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길로 장미의 이름을 사서 읽은 중학생 시절의 나는 영원한 제국도 그 길로 서점으로가 사서 읽었다. (그 때의 표지는 위 사진과는 달랐다. 사진 속의 표지가 훨씬 세련된 새단장한 버전이다. 표지에 문제의 시인 '올빼미'가 적혀 있는 것도 맘에 든다.)
뭔가 다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문제가 되는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까맣게 잊은 사람이 더 많겠지만,이인화라는 필명의 작가, 류철근 교수는 몇 년전 특검 수사로 2018년 2심 선고가 확정되었다. (그러고보니 강단에 복귀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가장 최근의 수사 결과나 선고가 아니라, '영원한 제국'이 93년에 나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후속작인 '인간의 길'은 노골적으로 박정희 전기에 가깝기 때문에 논란은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영원한 제국을 재미있게 읽은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인간의 길' 1, 2, 3권까지 끼고 읽는 모습을 지켜보는 90년대 학번 삼촌의 심정은 걱정스럽고 복잡했으리라.
논란의 시작은 영원한 제국 소설중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 때문이다. (정확한 원문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여 인용한다.)
'...정조의 홍재 유신을 거부했기 때문에, 조선은 정조 사후 60년만에 최저질의 국가로 전락하였다. 그 결과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럽국가들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보통 중상주의 절대왕정의 시기를 거치게 되는데, 조선은 이를 역사적으로 거부한 셈이고, 이는 메이지 유신을 결행한 일본과 다르게 20세기초 조선이 몰락하는데 한 몫을 했다' 는 논리다. 논리적으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는 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국력이나 외교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제고, 소설을 가지고 당시의 세계사를 논할 수는 없다. 극중 작가의 주장에 수긍은 가면서도 완벽하게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병자호란 이후에 이미 끝장난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별로 안 중요한 얘기였다.
독서모임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지만, 담론이라는 것은 '힘을 가진 말' 이다. 영어로 Discourse로 번역되는 '담론'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어떤 의견의 조류를 뜻한다. 대중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는 '여론'과는 비슷하지만 살짝 결이 다른 것이다. 여론이 독자가, 혹은 수신자가 갖게 되는 의견이 모인 것이라면, 담론은 작가나 기자, 혹은 발신자가 보내는 강력한 메세지가 모인 것이다. 여론과 담론은 영향을 서로 주고 받지만, 주체가 누구냐를 놓고 보면 담론이 훨씬 더 적극적인 것이다. 담론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공감대가 생긴것은 '여론'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운동 혹은 이데올로기는 '담론'이다.
영원한 제국은 유교 경전이 가지고 있는 담론의 어마어마한 힘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극화하여 보여준다. 주인공 이인몽과 정약용 (실존 인물이기도 한)의 대화는 숙종에서부터 정조에 이르는 조선정치사를 아주 '재미있게' 극화하여 잘 전달하고 있다. 우리하 흔히 그냥 '실학자' 라고 알고 있는 박지원, 이서구, 박제가 같은 사람들이 조선 정치지형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었는지를 역사서보다 잘 전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는 소설 작가의 스토리이므로 실제 역사와 혼동하는 것은 안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 후기 정치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담론의 힘은 이렇게 엄청난 것이다. 작중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다.
'세상에는 요순우탕 문무주공이 이룩한 단 하나의 나라밖에 없었다. 이후의 모든 국가들은 그 나라로 돌아가려는 시도였다.'
저 문장을 잘 이해하면 정조가 왜 그토록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는지 알 수 있다. 작가에 따르면 정조는 담론의 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누구나 자기 생각을 글로 자유롭게 글로 쓸 수 있는 박지원이 꿈꾸는 절대로 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정적이었던 정순왕후와 노론의 목을 치기 위해서 남겨진, 영조가 체제공에게 남겼던 비문이 육경고문을 인용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유교 경전을 인용한 글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힘이 있는 '담론'이 되려면 육경 고문의 인용문이 정식으로 채택될 수 있는 공식적인 문체로서 살아남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주인공 이인몽의 죽음도 아니고, 초반에 등장하는 위조기술자 검서관 장종오의 죽음도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바로 정조의 문체반정이다. 박지원 같은 신규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패관소품체의 글을 인정하지 않고, 육경을 인용하여 뜻을 전하는 순수한 고문의 시기가 정조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야 정적인 노론 청류를 몰아 역적으로 처단하고 본인 뜻대로 '유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옹호하는 듯한 홍재유신은 반드시 '새로운 문풍'의 죽음이 필요했다. 작가 이인화에 따르면 정조의 보수성은 정치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다. 더불어 세종, 성종, 정조 치하에서 집현전, 홍문관, 규장각이 등장하는데에도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이 기관들이 그냥 도서관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집현전, 홍문관, 규장각은 왕의 담론을 생산하는 정치기관이었으며 이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역사가 아닌 소설일 뿐이다. 이 블로그의 글은 '영원한 제국'을 리뷰하면서 소설이 보여주는 세계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담론이 단순한 '힘을 지닌 말'을 넘어 어떻게 사람을 살러거나 목을 칠 수 있는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동질성에 대한 논문을 썼다는 것을 상기하자. 연준이 양적완화를 선언하고 한참 윤전기를 돌리고 있을 때, Modern Monetary Theory, 이른바 MMT가 등장하고 기본소득 (UBI: 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한 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생각의 힘은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담론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일이 생각의 전염으로 시작하여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의 힘은 치명적이어서 개인의 행동과 현실을 바꾼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개인의 현실은 사회의 현실이 되고 이것은 인류의 진보나 퇴보로 이어진다. 최근에 키워드가 된 ESG 역시 담론의 일종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 '왕의 담론'이 아닌 '자본의 담론'이 중요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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