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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과 통합수능 - 간과하는 몇 가지와 교육 시스템의 속성

불곰맨발 2022. 7. 28. 12:25

애초에 문과 이과를 나누어 두고 뭘 배우겠다는 생각 자체가 글러먹은 생각이다. 각 과목마다 나름대로 필요한 이유가 있어서 공부할 때는 그렇게 어렵고 싫어도 막상 나중에 뭘 써먹어보려면 어떤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것이 아까워지는 순간이 살면서 한 번 쯤 오게 된다. 이건 애초에 도입하지 않았어야할 불필요한 구분이었다. 

문제는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이 대학입시와 수능 체제에 중요한 구분이었는 점이다. 전형에 들어가는 수험생 총원을 구분하는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문이과 교차지원 허용치가 낮았기 때문에 별 얘기가 없다가 지난 수능이 끝나고 2월쯤 대입 결과가 나오자, 역시 문과가 손해를 많이 보았다라는 정도를 뛰어넘어 '문과침공'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기사륻이 쏟아진다. 벌써 23년 수능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수학에서 표준점수를 잘 받기 위해 문과생들이 대거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다는 기사도 많다. 

이건 수험생들 입장에선 중요한 문제다. 당장 단기적인 성과에 영향을 크게 미치니까. 하지만 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사소한 문제다. 언젠가 없어져야 할 것이 없어진 것 뿐이니까. 

문이과 통합수능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크게 간과하고 있다. 


1. 소위 문, 이과의 지식이라는 건 사실 다 알아야 하는거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학적 원리, 수학적 모델, 그리도 데이터에 기반하여 맥락과 역사적 배경지식을 통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모든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2. 그 범위가 꽤 넓기 때문에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알고 다 잘 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수준에서 아주 뛰어난 이과학생이 양쪽 모두를 잘 할 수는 있지만, 그건 고등학교 교육과정 혹은 (선행학습을 아주 잘 했다고 하면) 대학 학부 수준에서의 얘기다.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갖추는 것은 어렵고, 사실 비효율적이다. 

3.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과 실행'이다. 지식에 근거한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뛰어난 기술을 먼저 발견하거나 특허를 내두고도 시장을 빼앗긴 기업의 이야기, 더 우수한 무기를 갖추고도 패배한 군대의 이야기는 세상에 많다. 무엇을 실행하여 어떻게 결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수능의 범위에 있는 지식으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제일 좋지 않은 것은 문이과 통합수능을 얘기하면서 결국 그 논의 끝에 있는 것이 좋은 직업을 얻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고등교육 체제에서는 '나는 어떤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자꾸 고민하게 하지, '나는 어떻게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을 고용할 수 있나?'를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자영업 수준에서 못벗어난다. 내가 모르는 지식은 사오면 된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을 조직하고 그 팀을 이끄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이미 안중에 없다. 

이 글은 수험생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글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분명히 해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다고 말하고 인강으로 배우는) 지식을 잘 습득하고 중요한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은 배우는 능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것이지, 그걸로 무슨 승부를 보는게 아니다. 만약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라면, 그 단점을 최소화하는 입시 전형 전략을 찾아 일단 준비하고, 내 강점을 극대화해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수능이 끝나면 고민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