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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끝난 모임은 해체되어야

불곰맨발 2022. 8. 4. 12:44

끝난 조직은 끝난 것이다. 각종 스터디 모임에 꽤 나가본 편이고, 그 모임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면 반드시 끝나서 해체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결과가 없거나 모이는 목적이 불분명한 모임이 길어져봐야 서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모임이 끝나면 퇴장

잠시 참여했던 GRE 스터디 모임부터 영어, 독서모임, 음악, 커피, 와인동호회 등 여러가지 유료 무료 모임들을 통해 배운 것이다. 끝나야 모임이 제대로 흩어지지 않으면 항상 안 좋게 헤어지게 된다. 어떤 형식의 모임이든 원래 모임의 목적이 해소되고 나서 흩어지지 못하면, 뭔가 다른 목적이 그 자리를 채운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던지, 누군가를 이용해 사기를 치려고 한다던지, 아니면 원래 왜 모였는지도 모르게 그냥 편해서 같이 시간만 보내는 조직이 되고 만다. 기업에 퇴직이 있고, 군대에 전역이 있는 이유다.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게 그 사람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조금은 더 일상적인 모임을 생각해보자. 조별과제를 함께 수행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조별 과제 발표가 끝나고 나면, 각자의 길로 헤어져야 한다. 목적이 사라진 조직은 의미가 없다. 모일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른 목적으로 만날 일이 있는 건 당사자들의 사정이다. 그리고 그건 따로 모인 사람들의 '새로운 목적'이 생긴 것이다. 미드 프렌즈에 나오는 것처럼 모임의 멤버가 가족처럼 친해져서 오래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도 모든 멤버가 다 같은 정도의 친밀함을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군중 혹은 대중이 탄생한다. 멍하게 모여 있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합. 헤세의소설 '데미안' 에서는 이걸 경계하는 에피소드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모든 조직에는 리더가 있다. 명시적이지 않다면 암묵적으로라도 있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동력을 잃거나 목적 자체가 해소되고 나면, '다음에 다른 좋은 일이 있을 때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가끔 우리는 그렇게 말하길 꺼려하거나, 두려워한다. 

2년전, 나는 내가 꾸려가던 작은 조직에서 나왔다. 함께 창작 활동을 해야하는 조직이었고, 방역수칙이 강화된 상태에서 활동하기가 어려워졌다. 사실상 작업 결과물을 얻기 위해 밖에서 여럿이 만나는 것이 어려워지자, 다른 성격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외부 활동을 당분간 쉬어야 한다는 멤버와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에 따라 조직이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심지어 서로 각자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중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그 조직을 계속 오너십을 가지고 유지할 생각이었다면, 과감히 활동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결과물을 계속적으로 냈어야 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일을 방해하는 조직에 소속된 멤버들을 내보내고 멤버를 교체했어야 했다. 오히려 20대의 나였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그 시절, 무대 연출을 맡을 친구를 미리 정해두고 기존 무대 연출 멤버를 내보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많아졌던 30대 후반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멤버들이 나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친목만 남은 조직에 리더십 문제가 생기면 결론은 하나다. 내가 나가거나, 조직이 흩어지거나. 나는 내가 나오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와 관계 없이 결말이 침울했다는 것은 큰 변화가 없었을 것 같다. 지금도 그 조직은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왜 유료로 기간을 한정하고 운영되는 독서모임이나 시험 합격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조직이 더 나은지 절감했다.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King Crimson이라는 전설의 밴드가 왜 앨범을 낼 때마다 멤버를 싹 교체하는지 나는 그런 운영 방식을 완전히 이해한다. 무한정 운영되는 조직은 모멘텀을 잃는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성이 흐려진다는 얘기다. 그리고 거기서 몇 년 동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친밀감 때문에 그냥 모여 있을 수 있지만, 결과물이 없으면 서로 모여 함께 즐거워할 일도 사라진다. 슬프지만, 이게 자녀들이 독립을 끝낸 가정이 해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흘러간 것은 흘러간 것. It's time to le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