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 (Greta Thunberg) 가 말하는 많은 것에 동의한다. '기후변화' 라고 단순히 말하기에 '기후문제'는 분명히 일상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명히 기후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야하지만, 국제정치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답답한 상황인 것도 안다. 툰베리의 나이가 19세라는 점을 이유로 그녀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판이 전혀 아니다. 환경에 대한 심모원려에 대해서 공감하는 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8일자 가디언지에 기고된 그레타 툰베리의 글은 비웃음이 나오는 글이다.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에대한 도덕적인 분노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툰베리의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문장을 직접 인용하겠다.

"Beyoncé was wrong. It is not girls who run the world. It is run by politicians, corporations and financial interests – mainly represented by white, privileged, middle-aged, straight cis men." (비욘세는 틀렸다. 여성이 세계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세계는 정치인들과 기업들 그리고 돈의 이해관계에 의해, 주로 중년 백인 특권계급의 태생적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굳이 주요 국가의 총수나 정치인 기업인들을 가리켜 인종과 성을 들먹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환경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면 기후와 환경에 대한 논리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좋겠다. 기후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모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남극이 다 녹아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나도 들지만,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는 문약한 과학자들이 맘에 안 든다면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힘의 논리를 무시한 어설픈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 따위에 의지하는 것은 세상이 망할 때까지 데이터나 모으자는 소리나 마찬가지에 불과하다.
그레타 툰베리를 한 번 더 직접 인용하겠다: "If everyone lived like we do in Sweden, we would need the resources of 4.2 planet Earths to sustain us."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스웨덴에서처럼 산다면, 전세계 인구를 버텨내기 위해서 4.2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툰베리는 글을 읽어보면 이미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다. 생활 수준을 낮추는 한이 있어도, 소비를 줄이고 보다 환경 친화적인 경제를 만들어야 하지만 리더십이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툰베리가 주장하는 것은 일단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UN의 탄소배출량과 그에 근거한 가이드라인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 아직 다른 나라에 전가하거나, 탄소배출량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횡행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이해가 가고, 분명히 정확한 통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충분히 공감한다. 툰베리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It will take many things for us to start facing this emergency – but, above all, it will take honesty, integrity and courage."(이러한 긴급사태를 직면하기 위해 많은 것, 무엇보다 투명함과 진실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문제는 세계가 투명함과 진실성과 용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둘 중에 하나를 해야한다. 당장 탄소배출문제를 해결하고 배출표준을 이행하기 위해 강대국이 힘으로 강제하거나, 아니면 기후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이익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첫번째 해결책은 물론 합리적인 타협을 하려는 사람이 선택할 일은 아니다. 두번째 방식을 사용하고 싶다면, 그레타 툰베리 본인이 정치인으로 나서 국제정치 무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는 수밖에 없다.
차라리 그녀가 이 선택을 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지구의 온도 상승을 몇 도C 상승에서 유지하려면, 이러쿵저러쿵 해야한다. 파리기후협약도 이미 충분한 타협이었다.' 라는 얘기만 자꾸하는 것이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툰베리 본인이 지구의 기후문제를 해결하거나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본인이 선언을 하고 해보겠다면 그녀를 오히려 지지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럴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툰베리 본인이 중년 백인의 여성 정치인이 되긴 해야하고, 그 때까지 지구가 버텨줄는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지구인에게 선택지를 제공하는 길이다. 본인이 그걸 원하는 것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세계는 이해관계로 돌아가고, 이해관계는 힘의 논리나 돈의 논리로 관철된다. (힘과 돈의 논리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자꾸 선언적으로 기후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백날 환경 규제하는 것보다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고, 중국의 인구가 줄고, 미국인들이 에어컨 틀어 놓고 긴 팔 입고 앉아 있는 촌놈짓을 멈추는게 필요하다. 이 논리의 근저에 깔려 있는 디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있는가. 스웨덴이 자랑하는 자동차와 엔지니어링 산업 제조업 부문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중국의 자본을 사용해 버티고 성장했으며, 그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럽의 소비자들은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에 의존해왔다. 대표적인 회사가 스웨덴의 볼보아니던가.
분명히 툰베리는 자국 스웨덴 기업들도 비판의 대상에 올려두고 있다. 이케아는 전세계의 목재를 얼마나 소비하는가. 툰베리라면 상당량의 목재를 소비해서 지구 어딘가의 나무를 베어낼 수밖에 없는 이 기업에도 비판을 가할 것이다. 이케아가 내세우는 지속가능한 경영이 감춘 사각지대도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적하는 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닐 수 있어도, 여론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당장 툰베리가 원하는 속도로 변화를 발생시키는 것은 어렵다. 당장 전쟁을 목전에둔 한국 같은 나라는 어떤가. 미사일 발사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핵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나라에서 기후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전쟁억지력을 포기할 수 없다. 툰베리에게는 기름을 엄청나게 퍼먹는 전투기와 전차를 만들어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한국이 곱게 보일리 없다. 보름 동안 7차례 발사시험을 북쪽 정권도 물론이다.
생존 본능을 가지고 뭐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리더들이 기후문제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것은 그들이 주류 백인 남성이어서가 아니라 본인 혹은 유권자들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세상에서 기후문제가 대수인가. 당장 굶어죽거나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기후문제는 힘 있는 사람들이 논할 수 있는 사치라고 느낀단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먼저다.' 그리고 사람은, 대중은 지속 가능한 지구 같은 것에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툰베리가 그렇게 원한다면 본인이 기후문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가길 바란다. 그 선언을 하기 전까지 나는 계속 그레타 툰베리를 비웃을 수밖에 없다.
10월 18일자로 기사화된 추가 내용이 있어 덧붙인다. 그레타 툰베리는 본인이 정치 활동을 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그레타 툰베리, '정치할 생각 없다', 한경 외 다른 미디어가 외신을 인용하여 보도) 툰베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충분히 모이면 기후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본인이 인생을 걸고 풀려는 문제를 생각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쩌다 유엔같은데 가서 트럼프를 쏘아본다고 해서 기후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기후문제는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둔다. 인간은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 고 판단해야 움직일 것이다.
'실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고전, 미니멀리즘 (2) | 2023.02.10 |
---|---|
생명이 끝난 모임은 해체되어야 (0) | 2022.08.04 |
문이과 통합수능 - 간과하는 몇 가지와 교육 시스템의 속성 (0) | 2022.07.28 |
2022년, 모기보다 초파리가 많은 여름 (0) | 2022.07.23 |
유튜브, TV, 책을 대하는 태도 (0) | 2022.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