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조금이라도 소스가 묻거나 남아 있는 과일 껍데기가 있으면 어김없이 초파리가 모여든다.
그런데 신기하게 모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없는 것은 아니고 간혹 한 두 마리씩 나다녀 물릴 때가 있지만, 예전처럼 모기가 많아 방충망과 배수구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 잠들었다가도 갑자기 '앵~' 하는 소리에 깨어 운이 벌개진채로 흡혈귀를 찾아 전등을 전부 켜재끼고 반드시 약이 아닌 손으로 모기를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생기는 여름이 아니다.
그 대신 어디 두유같은 것이라도 다 먹고 미처 치우지 못하거나, 음료수 방울이라도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곧 점점히 털이 자라는 것처럼 초파리가 날아와 앉는다. 손으로 초파리를 잡는 것도 즐겁지가 않다. 손으로 내려쳐서 짓이겨진 초파리는 피처럼 벌건 액체를 미세하게 내어놓고 죽는다. 모기도 아닌데 사람 피를 먹은 모기처럼 터져 죽는 초파리를 보니, 흡혈초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서리친다. 이 문장을 써놓고 보니 어딘가 초파리에 물려서 부푼 피부가 있는 것 같다. (근질근질)
이렇게 모기보다 초파리가 많은 것을 보면, 한반도는 열대화되어 가고 있다는 주장에 슬며시 수긍이 간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감이다. 느낌상 기후변화의 탓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몸으로 느껴지는 효과는 분명히 있으니까. 체감만으로 이게 기후변화인지, 기후의 변동성이 느껴지는 것인지 구별할 수는 없다. 왜 모기가 적고 초파리는 많은지 이유는 모른다. 내 생활에서 느껴지는 확실한 사실은 비가 꽤 오는 날씨에 실내 온도가 27도 이상으로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위는 꽤 일찍 온 편이라는 것, 이렇게 두 가지다.
이런 변화를 가지고 가설을 세워 논리적 추론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영역이다. 물론 나도 나름의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이런 변화를 토대로 도덕적으로 분노하고,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레타 툰베리가 할만한 유치한 일이다. 오히려 내가 할 일은 이 상태가 지속되고 악화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의 개인 비축분이 필요한가, 에너지 비용의 증가가 예상되니 재정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얼마나 준비하는 것이 적절한가. 지금 가진 차량의 에너지 효율과 비용을 고려할 때, 다른 차로 교환하거나, 매각하는것이 필요한가. 기후 변화가 식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개인 식량을 시장에서 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식량자원의 개인적인 소스를 확보해야 하나? 현재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의 위치나 규모는 적절한가, 혹시 이사하거나 사업장의 에너지 효율을 더 높여야 하는가. 내 생활환경은 에너지 비상상태나 이상기변에 대비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해두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레타 툰베리나 타일러 라쉬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예상되는 피해가 있거나 훌륭한 명분이 있다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세상이 움직이려면 기후변화를 막아 이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후변화를 막으면 '살려는 드릴게' 만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인간은 그만큼 영악하고, 그만큼 멍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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