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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협박이 난무하는 이유

불곰맨발 2022. 3. 5. 20:16

페이스북 타임라인이나 특정 포털에 가면 협박에 준하는 언사로 도배되는 시절이다. 2022년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심지어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남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발언들을 거리낌없이 한다. 나이와 경력을 봐도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심지어 이전 선거에서는 그러지 않았던 사람들도 함부로 막말을 한다. 후보를 악마화하는 것은 기본이고, 특정 지지자층을 향한 적폐화를 서슴없이 한다. 

선거자료 발송봉투

나도 저 봉투의 내용물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정보가 투표소 위치와 투표인 번호 같은 인적사항이라는 것을 안다. 나머지는 다 쓰레기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같은 것들은 어차피 지키지 않거나 못할, 이전에 나왔다가 재활용 하는, 통과되지 않을 운명이거나 실현되더라도 10년 후에나 가능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내가 투표를 해야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권리를 포기했다는 약점을 잡히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한 블로그를 만들어 나가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으뜸이 값싼 범생/먹물의 이상주의이다. 정치와 선거라는 행위는 그야말로 권력 엘리트들의 마음에 없는 이상주의를 감상할 수 있는 지리한 시간을 감당해내는 것이다.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민'들은 대개 시민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저 많은 공약들을 실행할 돈과 사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권력자들과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쥐어짜게 되어 있다. 왜 의문을 갖지 않는가. 왜 두 번 속는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질문의 의도는 따로 있다. 

이 글은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들을 향한 것이다. 왜 정치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안타까운 몇몇 지인들의 글을 읽어보자. 


'실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마음으로 투표에 나선다.'
'xx 찍는 x들은 다 뻔히 알면서 찍는거다.'
'xx안 찍는 사람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과연 xx 의혹이 있는 사람을 출마하게 그냥 둬도 되는거냐.'

'외신이 xx에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니....반대편을 지지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런 글을 소셜미디어에 적는 것은 어찌보면 넓은 의미에서 협박에 해당한다. 투표라는 건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행위여야 이상적이다. 저런 협박성 멘트를 정신이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오픈된 네트워크에 적는 것이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누구 말대로 이번 대선이 비호감 대전쟁이라면, 투표를 하지 않아도 좋다. 본인이 특정 이슈에 민감하다면, 어떤 후보의 해당 이슈에 대한 정책과 약속만 보고 투표를 해도 무방하다. 선거라는 행사와 투표라는 행위는 그 정도로 아주 뭉툭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따위가 어떻게 되든, 내 인생이 망가지지 않도록 내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당신이 대한민국이 갑자기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하거나, 반대로 한반도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건 당신이 그만큼 자신으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한국의 민주 시민이라면, 자신의 소신껏 투표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한국 땅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이상적인 민주 시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어때문에, 나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다른 문화와 생활 습관때문에 이 나라 시스템이 당신에게 봉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떠날 수 없다면, 당신은 이 나라의 유권자로서 법적인 자격을 만족하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냉정하게 준비되고 민주적 자질을 갖춘 시민의 이상에 도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이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항상 유권자를 실망시켜왔다. 이 나라는 기축통화국도 아니면서 3기신도시 토지보상금, 코로나 추경 같은 명목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고, 90년대생부터 국민연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연금재정건전성이 무너진다는 뉴스가 공공연히 나오는 나라다. 가장 국제자본주의 시장에 의존하는 나라가 시장경제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제적인 감각이 없는 정치인들로 국회와 청와대와 정부요직을 채워왔다. 그들은 항상 모든 국민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실질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혁신하고 비용을 줄여나가는 과업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수행한 일이 없다. 그런데도 선거철에 다시 한 번 정치인을 믿는 이유는 뭔가. 그리고 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부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서 저주에 가까운 협박을 공공연히 늘어놓는가.

정치제도와 국가는 그냥 정치인과 관료로 이루어진 운영체제에 불과하다. 운영체제라는 것은 마음에 안 들면 바꿔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업무중에 컴퓨터가 뻗으면 나도 운영체제 제조사 욕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왜 당신은 아직도 정의롭지 않은 윈도우를 쓰는가', 혹은 '반드시 iOS를 써야지 뭐하는 짓이냐.'라고 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은 아무 문제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당신에게, 어쩌면 당신에게만 생긴 것이다. 

선거철, 협박이 난무하는 것은 정치, 선거, 투표 같은 행위가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유권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만 평생 술래가 된다. 투표는 자신의 이권을 위한 정치적 행위이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