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성공과 실패가 있다는 걸 외면하고 있다. 인간 세계에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패배자에 대한 보조와 지지는 구성원의 재기를 지원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다. 문제는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논리를 가다듬고 지원을 늘릴수록 거기에 의존하는 사람도 늘어난다는데 있다.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이 불합격때문에 인생을 포기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불합격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 올바름 (PC, Political Correctness)은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논리이지만, PC 때문에 약자와 소수자가 더 나약해지는 것은 분명한 부작용이다.
아마도 조던 피터슨의 2014년 인터뷰 영상들이 PC의 부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 같다. 조던 피터슨을 매우 존중하지만, 한편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고, 아주 주의깊게 들어야하는 어려움도 있다. (조던 피터슨에 대해서는 별도의 독서기록문으로 다룰 생각이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며 드디어 배가 불렀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보면서 평화를 지지하고, 침략을 당했던 한국인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인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길 바란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과 누가 권력을 행사하여 그것을 이룰지는 엄청나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국이 해방 이후 40년간 고생스러운 대내외 투쟁과 정치지형을 견뎌야 했던 것을 상기하자. 전쟁이 끝나도 우크라이나는 내전을 겪을 확률이 높다.) 정치적 올바름과 정의의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감정적으로, 말로 지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군사력을 이해하고 그런 물리적인 힘을 갖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PC는 이 지점에서 철저하게 실패한다.
힘을 가진 자가 세상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의든 정치적 올바름이든 힘과 힘의 대결을 피하거나 결과가 나온 이후에 현상을 해석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담론'이긴 하지만, '담론'은 물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미사일이 영토내에 떨어지고 나서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아무런 힘이 없는 말이다. 한국인은 이런 말의 공허함을 이미 역사적으로 계속 겪어왔다. 민비를 시해하도록 내버려둔 조선의 군사력 수준이나, IMF 외환위기로 철저하게 해외 자본에 시장을 열어야 했던 90년대 대한민국의 금융관리 수준 같은 것들로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세상이 살만해지니까, 지는 것을 용인하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기본소득이나 급진적인 환경생태주의 같은 것들은 대표적인 사례다. 가치의 총량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소득은 부정되어야 하고, 한국에서 전쟁에 대비해 석유를 태우는 것은 환경에 우선한다. 인간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다른 인간을 설득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보다 가치 있다는 생각이 과도하게 지지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항상 꽃보다 아름답지는 않다.' 불쾌한가?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몰입한다. 설령 생존을 위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글을 적는 블로거 자신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블로그를 통해서 적어내려가는 글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 대부분 내가 적는 글들은 그런 가치가 없다. 나는 나 스스로 내가 대부분의 경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가다듬고 한 글자씩 적어내려갈 수 있다. 나의 글에 항상 모든 사람들이 호응한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내 글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는 더 어려워 진다. 글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도 사실 아주 나약한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나 스스로를 이과 먹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지하는 것을 너머 이상을 과도하게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살기를 원한다. 인간 세상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게 살다' 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아름답게'가 아니라, '살다'에 있다. 세상을 살면서 정의를 바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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