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책, 고전, 미니멀리즘

불곰맨발 2023. 2. 10. 11:05

책을 좋아거나 소개하고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은 장단점을 보두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책을 산다고 해서 그 책의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 지식을 습득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지식을 익히고 시험하고 나만의 경험과 지혜로 승화시키는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사고 고전 강의를 듣고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학습자가 원하는 삶을 당장 제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책, 독서, 고전이라는 단어들은 무조건 좋을 것만 같지만, 정신 세계에도 미니멀리즘은 필요하다. 머리와 가슴을 쓰는 시간을 줄여야 움직여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고, 효율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더미

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종의 새해 맞이랄까. 내가 가진 모든 책을 꺼내어 쌓아본다. 책 한 더미가 나왔다. 과연 나는 이 책을 전부 제대로 소화하고 그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실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던가. '서가에 다 읽은 책만 있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던 것이 기억난다. (정확하지 않다.) 물론 내가 읽을 책이 꽂혀 있고, 아직 읽지 않은 그 책들로부터 자극을 받는 것은 좋은 기분 전환 방법이다. 사실 대형 서점에서 우리는 비슷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서점에 꽂힌 많은 책에서 학습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자극을 얻는다면, 굳이 나의 서재에 어떤 책들을 많이 쌓아놓을 필요는 뭔가. 

책과 고전을 사놓고 일종의 새해 결심 같은 것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말이다. 조금 실용적인 책들이라면, 내가 곧 이 분야를 섭렵하는 지식을 갖추겠다는 야심을 갖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자. 나는 내가 책을 샀던 시점의 계획대로 공부를 했는가. 독서를 나의 생활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도록해서, 실제로 원하는 지식이나 지혜를 얻었는가. 책을 사는 시점에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스스로 얼마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써서 책을 산다. 가지고 있는 할인쿠폰이나 직원 복지포인트로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우리는 '지식을 사는데 헤퍼지곤 한다.' 

책은 교양을 명품처럼 두르거나 최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책은 정신을 일깨우는 도구이자 삶을 바꾸는 도구다. 하지만 책의 특성상 오랜 시간 숙독하지 않으면 당장의 지식을 빠르게 배우기 어렵고, 지식을 경험과 지혜로 전환하기 어렵다. 특히 고전은 '살아남은 담론의 체계' 로써 정독 숙독하면 깊이를 제공하지만, 일상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 매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책 미니멀리즘을 권한다. 읽지 않을 책을 사들이는 것도 욕심이다. 마치 기초 과정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선행 학습을 위한 학원을 등록하는 것과 같다. 기록 매체와 e-book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뭔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스스로 별도 기록을 해두고 독서와 학습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천천히 책을 사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