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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삼성전자의 업계 위치를 생각해보면 초격차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이 몰렸다.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권오현의 초격차는 추천하지 않는다. 읽을 필요가 없다기 보다, '추천하지 않는다.' 이유는 책의 저자인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이 감수한 '위험의 크기' 때문에 그렇다. 저자는 완전히 망할 위험을 감수한 적이 없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히) 과대평가 되었다.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 이라는 초격차라는 단어가 그 클래스에 걸맞게 이 책에서 빛나는 순간은 책의 217 페이지에 있다. 저자가 삼성전자 임원이자 애플의 반도체 공금 업체 대표 자격으로 전설적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프리젠테이션 현장에 있었다는 '격의 발견' 부분이다. 저자는 당시 컴퓨터 제조업체였던 애플이 모바일 시장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저자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자, 진정한 초격차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장면 이외에 초격차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이렇다할 눈에 띄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1위 기업이 되기는 했지만, 현재의 반도체 시장과 국제정세는 바뀌어 그 1위 자리라는 것이 초격차를 실현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저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3년 이상의 미래 예측은 의미가 없다라고.) 오히려 초격차를 달성하고 있는 것은 잡스 사후의 애플이다. 미중 갈등 중에도 애플은 중국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경영 결정을 하고 있고, 전세계 시가총액 1위를 이룩했으며, 워렌버핏도 애플에 투자하고 있다.
저자인 권오현 회장은 2017을 끝으로 삼성전자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실상 은퇴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고, 이후 회장 추대 및 고문으로의 경력은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피튀기는 삼성전자 경영의 일선에 있었던 시간은 아니다. 이 책은 2017닌 이후 2018년 중반에 세상에 나왔다.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저자가 삼성전자 CEO에 오른 것은 분명히 권오현 개인이 보여주는 능력이자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초격차라는 책은 고용된 CEO, 임원이 참고할 책이지, 창업자를 위한 책은 단연코 아니다. 운영하는 사업이 한 번 궤도에 오르고 나서 참고할 책이라는 뜻이다. 리더십과 권한 위임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지금 눈 앞의 창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갖는 관심사와는 다르다.
결국 CEO와 오너의 차이다. 이 두 단어의 차이를 모른다면 창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너는 최초의 창업자다. 창업 분야를 결정하고, 그 분야에서 자기가 직접 일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돈 버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사람을 의미한다. 비즈니스 분야와 모델을 만든 사람이다. 단, 자영업자와 사업의 창업자는 다르다. 자영업자는 창업 이후 자기가 일해야 하지만, 창업자는 창업 극초반이 아니라면 자기가 경영할 필요는 없다. 기술적으로 오너는 창업 이후에 이사회를 만들것인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CEO는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다. 쉽게 말하면 창업자가 고용하는 업체 대표다. CEO는 창업자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업자가 CEO가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이라면. 핵심은 '고용된 사람'이라는 점이다. 마리사 메이어는 야후의 CEO로 고용된 사람이다. 현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도 고용된 CEO다. CEO에게는 결정권이 있다. 하지만, CEO가 그 기업이나 사업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창업자가 반드시 오너는 아니다. 헷갈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맥도날드 형제는 창업자이지만, 형제가 운영하는 본점의 오너였지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오너는 아니다.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오너는 레이 크록이(었)다. 시간에 따라 회사의 지분이 희석되면서 주식회사의 오너는 불분명해진다. 빌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너이자 창업자였지만, 지금 그가 CEO는 당연히 아니고, 더 이상 오너인지도 불분명하다. 초격차의 저자인 권오현 회장은 CEO였으나, 삼성전자의 오너는 당시 이건희 회장이었고, 지금은 (곧 회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가. 창업자와 오너는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점이 피터 틸의 '제로투원'이 초격차에 비해 예비창업자에게 남다른 가치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격차'라는 책은 책이 다루는 지평이 CEO에게 국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태생적인 한계이다. 초격차에 나오는 리더십의 본질이나 인재, 전략 같은 내용이 흔한 경제, 경영 분야 서적의 짜깁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의 저자가 그 이상의 위험을 감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권오현 회장은 2017년 퇴직하면서 92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단한 액수다. 권오현이라는 경영을 말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저자가 돈을 번 원리가 사업의 성공이 아니라, 연봉과 퇴직금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부를 측정할 때, 흔히 테슬라의 시가총액에 대해서 얘기하지, 머스크의 연봉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의 연봉은 1달러였다. 끝내 야후를 살리지 못하고 떠난 전CEO 마리사 메이어의 퇴직금은 2천억원 가량이었다. 차이를 알겠는가. 그리고 이것이 로버트 기요사키 같은 사람이 '부자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지점이다. (로버트 기요사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겠다.)
삼성전자 임원들의 독서리스트에 '초격차'가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내일의 일론 머스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초격차는 필요없는 책이다.
이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1위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기업이 되었다. 그건 권오현 회장의 과오는 아니다. 저자는 당시 CEO로서 경영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경영 환경과 시장이 변했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삼성전자가 초격차를 달성한 기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초격차'가 무색하게 다시금 메모리, 비메모리 부문할 것 없이 다시 무한경쟁으로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경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1위 반도체 업체의 자리를 탈환할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쟁해야 하는 회사라면 '제로투원(0 to 1)'을 달성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것이 삼성전자라는 좋은 기업의 '현재'에 대한 나의 평가다.
초격차는 1을 1.3, 1.4로 만들어 가는 경영 전략이다. 0을 1로 만드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삼성전자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0을 1로 만든 진정으로 창업자이자 오너였던 사람은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회장이다. 현재에도 현 삼성전자 각 부문 CEO와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진지하게 '사업가'를 꿈꾸는 예비창업자라면 초격차보다는 이병철 회장의 전기를 읽는 것이 좋겠다. 기흥 반도체 라인을 처음 건설하고 있을 때, 이병철 회장은 이미 암 투병중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재용의 ARM 인수에 관심이 있다. 손정의 회장이 ARM 투자 제휴를 논의하는 사람이 현 CEO인 경계현 사장이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것에서 뭔가 와닿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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