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리더 (마이크 월시) - 데이터 기반 기업으로의 변신은 가능한가

불곰맨발 2022. 10. 3. 21:17

2019년에 나온 '알고리즘 리더' 라는 이 책은 사실 AI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대해서 찾아본 많은 책들중 하나에 불과하다. 흔히 인공지능 분야에 관한 경제, 경영 분야 도서는 너무 많아서 다 읽기 쉽지 않다. 해당 분야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책을 골랐어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데이터, AI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고, 필요한 책들은 여전히 읽어 나갈 수밖에 없다. (사실 다 읽을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간 생활의 방식이 다시 한 번 바뀌는 시기에 와 있고, 근본적인 변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상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독서모임이나 각종 스터디 모임에서도 이 주제는 빠지지 않는 주제이다. 

알고리즘 리더 (2019)

이 책의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는 영상이 바이럴을 타고 항공사가 상당한 손해를 봐야했던 사건을 기억하는가. 이 책의 도입부는 그 사건의 핵심에 고객응대서비스라는 회사의 대응이나 인종차별논란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나이티드 항공의 예약 데이터 알고리즘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알고리즘이 기업 운영과 의사결정의 핵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지금 이 시간에도 샇이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데이터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책 내용의 주를 이룬다. 이건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의 내 관점은 좀 다르다. '업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알고리즘은 무엇인가. 이건 기업마다 다른데, 그렇다면 내가 운영하는 기업, 혹은 한국의 기업들도 이러한 '전환'이 가능한가. 이 두 가지가 내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환' 이란, 흔히 업계에서 디지털 전환, 혹은 데이터 전환 (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관료화된 대기업들 혹은 정부 그 자체가 Digital Transformation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모든 회사가 그러한 전환이 과연 필요한가. 이게 궁금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에서 제공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들이다. 

자동화와 재택근무, 애자일 (Agile) 방법론 같은 새로운 조직 운영원리는 사실 애초에 새로운 것도 아니었고, 지난 방역의 세월을 거치며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다 애자일하게 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자동화와 메타버스가 일하는 방식의 새로운 지평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어떤 도구 A가 정답이다.' 라고 얘기하는 오류에 불과할 수도 있다. 도구 (Tool)이 목적일 수는 없다.

이 책이 제공하는 더 많은 질문이란,


1. 내가 일하는 곳이, 나의 회사가 이러한 방법을 적용하는데 적합한가.

2. 무엇이 '핵심 알고리즘' 인가.

3.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다. 

1, 2번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할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조직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까. 이 책에서 어떤 해답을 따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1번 질문에 대한 대답이 Yes 라면, (당연히 있을) 구성원들의 변화에 대한 반발을 처리하는 일이 우선이 될 것이다. 책에서는 인력의 방출없이 이 전환을 수행하기를 권고하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필요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성원만큼 회사가 내보내기 좋은 사람은 없다. 

2번 질문에 대해서는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남은 구성원들이 '업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알고리즘을 결정해야 한다. 자동화와 업무 시스템의 매끄러움 (Seamlessness)는 도구에 불과하다. 

 

책을 읽기에 핵심적인 부분은 결국 3번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이 해야하는 일은 의심하는 일과 결정하는 일이다. 데이터가 뱉어내는 결과를 의심하고, 지금 학습되어 돌아가고 있는 알고리즘이 핵심 알고리즘인지를 의심하고, 데이터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는 없는지 되물어 보는 일말이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결정이 합리적인 의심을 모두 해소한다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고, 경우에 따라 그 결과에 대한 이익을 누리거나 책임을 지는 일을 인간이 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줄거리가 생각났다. 아가사만 가지고 있었던 앤 라이블리의 죽음에 대한 영상 데이터를 알고리즘은 그냥 Shadow 데이터로 처리해 버려버렸지만, 그걸 의심하는 사람 아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 인간이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의심하는 것. 과연 데이터를 통해 알고리즘이 판단한 결론은 설명 가능하고 다른 해석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는지 검증하는 작업말이다. 괜히 Explainable AI라는 학문분야가 있는게 아니다. 이건 알고리즘을 둘러싼 시스템의 신뢰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고, 어찌보면 Digital Transformation에 저항하는 구성원들이 하기에 최적인 업무일 수도 있다.

전환의 필요성을 느끼고 업무를 진행하거나 의심하거나, 이 둘 중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구성원은 미래의 업무 환경에서 쓸모가 없다. 문제는 충분히 관료화되어 있는 한국의 많은 조직들이 이러한 전환에 대해서 과연 심각하게 생각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정부기관의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이나 금융기관의 횡령 같은 뉴스가 미디어를 장식한다. 요컨대 일부 조직들은 데이터로 관리되지 않는 조직의 사각지대에 기생하는 구성원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